목차
1. 일기
마녜루에서 5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각. 걷기 시작했다. 깜깜한 촌길. 헤드랜턴을 끼고 걷고 있으니 어제 만났던 잭 아저씨와 마주쳤다. 잭 아저씨도 오늘 비야마호르까지 간다고 한다. 인사를 나누고 그는 먼저 앞질러 간다. 새벽공기를 뚫고 오늘도 간다. 그날의 첫걸음을 시작할 때는 무릎에 통증이 있지만 조금씩 걸으며 워밍업이 되면 통증은 금세 무뎌진다. 첫 번째 마을을 통과하고 두 번째 마을로 가는 도중 입고 있던 긴바지를 벗었다. 그리고 오늘은 쪼리를 신고 걷는 날이다. 전날 발 상태를 보니 물집이 조금 잡혀있어 오늘 쪼리를 신고 걷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쪼리를 신고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가 가진 쪼리가 쿠션감이 좋은 쪼리라 그런지 발바닥이 아프다거나 걷는데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풀잎에 맺힌 새벽 이슬이 발과 다리를 적신다. 오늘 걷다가 손을 보니 손에도 물집이 잡혀있다. 전날 지팡이를 짚으면서 언덕을 내려올 때 그립을 이상하게 잡았더니 이렇다. 이젠 지팡이 요령도 생기고 다리도 많이 아프지 않다. 두번째 마을을 지날 때 팜플로나에서 봤던 게리와 셸리를 보았다. 그들은 부녀지간으로 같이 순례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전날 이 마을에서 머물고 이제 출발한다고 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을 떠난다. 오늘은 전날 친구들이 머물렀던 에스떼야를 지난다. 생각보다 규모가 있는 도시였고, 조용하지만 편의시설은 다 있는 좋은 동네처럼 보였다. 에스떼야를 지나 이라체에 있는 와인분수에서 와인을 떠마시기 위해 작은 물한병을 샀다. 물을 비우고 벤치에 조금 쉬다가 다시 출발. 에스떼야를 벗어나 산길로 진입하는 입구에 유명한 헤수스 대장장이 집이 있었다. 직접 만든 멋진 공예품과 목걸이가 있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위한 선물을 생각하고 있던 터라 몇 개 구매하고 내 것도 샀다. 나의 첫 까미노 기념품.
대장장이의 집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니 와인분수가 있었다. 전에 길에서 만났던 캐나다 모녀가 있었다. 그들에게 부탁해 사진도 남기고 아까 만들어둔 빈 물병에 와인도 길러마셨다. 색깔이 연한 레드와인이었고, 맛도 아주 좋았다. 물론 뭔들 안맛있겠는가. 이라체 와인분수의 와인은 매일 일정한 양만 제공되어 운이 안좋으며 와인을 못먹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와인을 반 병 정도 담아 홀짝이면서 다시 걷기 시작한다. 와인분수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와인박물관과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정말 와인에 진심인 나라인듯하다. 오늘은 커피를 한잔도 안 마셔서 그런지 걷는 도중에도 눈이 감길 만큼 피곤하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이라체를 지나 비야마호르 직전 마을인 아즈퀘타도 지났다. 지도상으로 봤을 때 비야마호르로 가는 오르막이 가팔라 보이던데 막상 올라가 보니 별것 없었다. 겁부터 먹는 성격은 쉽게 안 고쳐지나 보다.
오늘은 비야모흐르의 아이시스 트레일스라는 알베르게에 머문다. 도착하니 체크인 오픈시간까지 몇 시간 남았다. 알베르게 앞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린다. 높은 곳에 있는 만큼 경치도 좋다. 오늘의 알베르게는 침대+저녁식사+아침식사까지 해서 30유로에 결제했다. 어제 마녜루에서는 침대+저녁식사 29유로에 비하면 좀 더 저렴하다. 체크인 후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볕이 좋아 금방 마를 것 같다. 알베르게 옆에 있는 바로 가서 맥주와 햄버거를 시켜 테라스에 앉아 먹었다. 반팔티를 어깨까지 걷어 올리고, 반바지를 허벅지 위까지 올렸다. 얼굴은 탔는데 몸이 안 타서 좀 태우고 싶었다. 까미노가 끝났을 때 얼마나 타있을까. 간단한 점심식사 후 숙소로 돌아와 잠시 낮잠을 청했다.
개운하게 낮잠을 자고 체크인 때 신청한 저녁을 먹으러 간다. 이 알베르게는 교회? 성당? 의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된다고 한다. 그래서 생전 안 해본 식전기도도 해보았다. 아멘. 식사로는 샐러드와 치킨카레, 디저트로는 아이스크림 같은 요구르트? 가 나왔는데 모두 훌륭했다. 카레를 더 먹고 싶었지만 샐러드를 너무 많이 먹어 참았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내일 아침식사 봉투를 챙겨 침대로 돌아왔다. 빵과 커피, 사과, 잼 등이 들어있었다. 샌드위치 같은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괜히 시켰나 싶기도 하지만 먹을 것은 다다익선 아니겠는가.
내일은 갈길이 멀다.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로그로뇨까지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여기서 40km나 떨어져 있다. 무릎에 괜찮아지니 이제 아킬레스건이 말썽이다. 오늘 쪼리를 신고 걸은 것도 물집 때문도 있지만 아킬레스건 때문이다. 긴 부츠에 아킬레스건이 쓸리기도 하고, 아킬레스건에 부하가 많이 걸려 붓고 아픈 것 같다. 내일은 살로몬 운동화를 신고 걸어볼까 한다. 몸이 점점 까미노에 적응하는 것이 느껴진다. 성한 곳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또한 지나가면 한층 건강해져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쁜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한다.
2. 비야마호르 데 몬하르딘 알베르게 정보
언덕에 위치한 비야마호르에 있는 알베르게 중 그나마 규모가 가장 큰 알베르게다. 자원봉사자들의 봉사로 알베르게가 운영되고 있으며, 저녁에는 커뮤니티 식사, 다음날 아침식사를 신청하면 빵과 주스, 잼 등을 종이백에 담아준다. 가격은 배드+저녁식사+아침식사 까지 합쳐 30유로. 가격도 적당하고 시설도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안오는 비교적 조용한 지역이라 참 좋았다. 인스타그램 계정도 있으니 아래 링크를 걸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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