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일기
오늘도 여전히 5시에 기상했다. 어제 빨래를 늦게 한터라 준비시간이 좀 더 걸려 6시쯤 출발했다. 이른 새벽인데도 도시 곳곳이 시끄럽다. 아 오늘 토요일이구나. 한국에서 나도 한때 저러고 다녔었지. 여전히 하루의 걸음을 시작할 때는 무릎이 조금 아프다. 오늘은 30km. 다소 먼 거리지만 어제의 40km를 생각하면 마냥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루카가 나를 앞질러 나간다. 나헤라에서 보자!!
나는 로그로뇨를 벗어날 때까지 조금씩, 천천히 움직인다. 약을 먹어야할 것 같아 식량가방에서 사과를 꺼내 먹고 아스피린을 한 알 먹었다. 조금 지나니 통증이 훨씬 나아졌고, 이제 주변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국에는 없는 풍경이라 눈에 많이 담으려고 노력한다. 첫 번째 마을인 나바레떼에 도달하여 카페에서 에스프레소와 바나나를 하나 샀다. 어제 로그로뇨에서 산 크루아상과 함께 먹고 나서 다리를 연신 주무른다. 어제 살로몬 운동화를 신고 40km를 걷고 나서 발에 물집이 엄청 많이 잡힌 탓에 오늘은 쪼리를 신고 걷는다. 아마 이제 다시는 살로몬을 신고 걸을 일은 없을 듯하다. 부츠를 신었을 때 아팠던 아킬레스건도 다행히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 다음 마을인 벤토사로 향하는 도중 발에 느낌이 이상해서 보니 물집이 몇 개 터졌다. 따꼼따꼼하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니어서 발에 바람을 많이 쐬며 걷는다. 벤토사에서도 콘레체 한잔과 빵을 하나 사먹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나헤라까지는 10km 정도 남았다. 쉬지 않고 걸으려 하지만 중간중간 담배도 태울 겸 천천히 쉬어간다. 어느덧 해가 내 머리 위에 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지만 오늘은 바람은 꽤 불어준다. 밀밭의 밀과 꽃들에 바람에 파도친다. 바람이 지팡이 구멍을 통과하며 피리소리도 난다.
손에 난 물집이 터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지팡이를 짚어서 물집이 터진 곳이 애리다. 나중에 알베르게에서 약을 발라야겠다. 루카에게 연락해보니 이미 나헤라에 도착했다고 한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러다 길을 걷는 도중 뜬금없이 냉장고를 발견했다. 도네이션 바였는데 냉동고에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1유로 정도 기부통에 넣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꺼내 한 입 물었다. 기억에 오래 남을 달달함이 입 안에 시원하게 퍼진다. 나헤라 입구에 다다랐을 때가 1시 45분쯤. 계산해 보니 2시쯤 알베르게에 도착할 것 같았다. 알베르게 체크인 오픈시간도 2시니까 딱 맞게 체크인을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막상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엄청 많은 순례자들이 가방으로 줄을 세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알베르게는 공립 알베르게로 최소 6유로 정도의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시설도 나쁘지 않고 평점도 좋다. 나도 일단 가방으로 줄을 세웠다. 대강 가방 갯수를 세어보니 아슬아슬했다. 2시가 조금 넘은 시각 알베르게 직원이 문을 열고 체크인이 시작되었다. 나를 앞질러간 루카와 파비온은 안전빵으로 앞 쪽에 줄을 섰다. 뒤쪽에 줄을 선 사람들이 어디서 줄이 끊길지 옥신각신한다. 때마침 알베르게 직원이 나와 카운트를 시작한다. 제발 제발.... 여기서 줄이 잘리면 꼼짝없이 다음 마을로 가야 한다. 정원이 총 50명인데 내가 48번째였다. 난 통과였다. 한숨 돌리며 조금씩 줄을 줄여나가는데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카운팅을 시작한다. 그러더니 딱 내 앞에서 줄이 잘렸다. 뭐지??? 알고 보니 이미 체크인한 사람이 밖에 나와 줄 서있는 사람과 얘기하다가 같이 카운팅 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카운팅이 시작되었다. 내가 딱 50번째 순례자였다!!! I'm the last man!!! 환호를 질렀고 사람들이 웃는다. 비로소 안심하고 웨이팅을 이어나간다. 그렇게 내가 체크인하기까지 1시간 반이 걸렸다. 걷는 것보다 힘든 웨이팅이었다. 체크인 후 안내사항을 듣고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발을 씻는데 물집 터진 곳이 따갑다. 다리와 발도 욱식거린다. 개운하게 씻고 나서 밖에 나와 루카와 얘기를 나눈다. 오늘 여기 알베르게는 예약이 안되고 오로지 선착순으로 체크인을 하는 곳인데 루카가 약간의 꼼수를 써서 아직 도착 안 한 매넌의 침대를 잡았다고 한다. 매넌을 자기 여자친구 라고 하고 여자친구가 다리를 다쳐 늦는다고 한 것이다. 루카는 그때부터 안절부절 밖에서 매넌만 기다린다. 나는 내일이 일요일이라 먹을 것을 사러 마트에 갔다. 빵과 초리소, 치즈, 맥주 한 캔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바에 앉아있는 프란체스카 자매와 파비온, 에밀리와 인사했다. 마트에서 돌아오니 매넌이 도착해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중간에 친구를 만나 꿀 시음을 한다고 늦었다고 한다. 루카가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데.... 매넌이 조금 얄밉다. 그렇게 잠시 벤치에 앉아있다가 아까 프란체스카 자매와 파비온, 에밀리가 있던 바로 갔다. 거기서 와인음료? 칵테일? 같은 것과 타파스를 조금 먹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피곤이 막 밀려온다. 맥주 한잔과 와인에 이렇게 무너지다니. 지금 몸이 많이 피곤한다가 보다. 사실상 매일매일이 극기다. 친구들에게 피곤하다고, 먼저 들어간다고 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침대에서 낮잠을 잘까 하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그래서 다시 저녁 먹을 곳을 찾아 밖으로 나섰다. 음식점을 찾아 골목을 다니던 중 루카를 만났다. 루카가 고민이 있는 듯하다. 타파스집에 들어가 진지한 대화를 시작하려는데 매넌과 다른 친구들이 우리를 보고 들어온다. 자리가 불편해 타파스를 시켜 먹다가 이내 얼른 나가버린다.
루카는 매넌을 좋아한다. 들어보니 이제 막 마음에서 뭔가 피어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그래서 루카는 매넌에게 어떻게 부담스럽지 않게 조금씩 다가갈지가 고민이었다. 부담스럽지 않게 조금씩 표현하라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매넌도 너의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그러고 한동안 우린 말없이 알베르게를 향해 걸었다.
2. 나헤라 알베르게 정보
내가 묵었던 나헤라의 공립 알베르게이다. 정원이 50명 정도로 수용인원이 적은 편이 아니지만 늦게 도착한다면 자리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예약은 불가해서 오직 워크인으로만 체크인이 가능하며, 나헤라에 머물 예정이신 분들은 다른 사립 알베르게를 미리 예약하거나, 조금 서둘러 도착하길 추천한다. 나헤라에는 알베르게가 많지 않다. 다음 마을인 아조프라까지 가려면 또 5.7km를 걸어야 하는데, 그럼 로그로뇨에서 아조프라까지 30km 이상을 걷는 것이라 부담스럽다.
최소 6유로의 도네이션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주방시설 완비. 샤워장과 침대를 비롯해 기타 시설들도 깔끔한 편이다.
3. 나헤라 맛집 정보
루카와 저녁식사를 했던 식당이다. 나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핀초들을 먹었지만 구글 리뷰애 있는 사진들과 글을 보면 다른 음식들도 꽤 맛있다는 평이다.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동네 주민들 또한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나는 참치에 간 무가 올라간 핀초가 제일 맛있었다. 가격도 착하고 맛도 좋으니 나헤라에서 식당을 찾고 있다고 이곳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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