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일기
오늘은 알람을 끄고 더 자다가 5시반에 일어났다. 고작 30분 더 잤지만 뭔가 개운한 느낌이다. 오늘도 걸을 준비를 하고 짐을 챙겨 어제 저녁식사를 했던 곳으로 내려갔다. 가보니 간단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버터와 빵, 각종 잼, 티, 커피 등등. 나는 티와 빵에 버터와 잼을 발라 먹었다. 마지막으로 호스트 아저씨와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29km 정도. 저번 폰세바돈과 비슷하게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 되다가 목적지에 다다를 때 즈음 경사가 급격하게 올라간다. 길을 걷다가 어제 같은 알베르게를 썼던 스페인 친구 라몬을 만났다. 그는 현재 유튜브를 하고 있다고 해서 구독을 해주었다. 나중에 한국가서 한번 봐야겠다. 역시 얘기하면서 걸으니 시간이 금방 간다. 라몬의 걸음이 빨라 첫번째 마을 이후로 그를 먼저 앞서 보냈다. 두번째 마을에서 문을 연 카페가 있어 커피 한 잔 할겸 들렀다. 순례자들이 많았지만 일단 줄을 서본다. 그 카페에서 30분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사람도 많고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또르띠아와 커피를 얼른 마시고 다시 출발했다. 5km 정도 걸어 도착한 세번째 마을에서는 카페 꼰레체와 쵸리소 보카디오를 먹었다. 이번에는 보카디오 양이 꽤 커서 먹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오늘 갈 길이 먼데.... 이젠 카페나 바에 들리지 않고 잠깐씩 앉아 쉴 생각으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급한 마음에 오르막임에도 발걸음을 재촉한다. 덩달아 숨도 점점 가파온다. 마침내 중간 마을에 도착. 벤치에 앉아 쉬려고 하는데 목걸이와 팔찌를 만들어 파는 공방이 보여 들어갔다.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목걸이를 착용도 해보았다. 가격을 물으니 조금 비쌌다. 꾹 참고 나와 다시 출발. 오르막을 오를 때 숨이 차고 힘들지만 내 옆으로 보이는 명장면들을 보면서 간간히 숨을 돌린다.
마침내 '카스티야 이 레온'주와 '갈리사아'주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지석이 보인다. 이제 산티아고가 있는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온 것이다. 때마침 지나가던 캐나다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사진도 찍었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오 세브레이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오 세브레이로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스코틀랜드 전통악기처럼 보이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옆에 놓인 돈통을 보니 오늘 수입이 짭짤해 보인다. 나는 곧장 오늘 묵을 알베르게로 향한다.
갈리시아 지방의 무니시팔 알베르게(공립 알베르게)는 코로나때 전부 리모델링을 해서 시설이 꽤 깔끔하다. 마을에는 이미 순례자들이 꽤 많이 도착해 있었다. 다행히 따뜻한 물도 잘 나와 개운하게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할 수 있었다. 오 세브레이로는 해발 고도가 높아 한낮인데도 꽤 쌀쌀하다. 긴바지와 외투를 걸치고 마을 중심부로 간다. 식당 몇 개와 기념품 샵이 보인다. 기념품 샵에 들러 패치 1개와 가방에 달고다니다가 잃어버린 뱃지를 하나 샀다. 기념품 샵 사장님이 계산을 하며 내 국적을 묻는다. '꼬레아'라고 하니 태극기가 그려진 까미노 뱃지를 서비스로 주셨다. 한국인들 이런 서비스 진짜 좋아하는데 여기 사장님 장사 참 잘하네.
테라스 자리에 손님들이 가장 많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내부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고, 나는 메뉴를 살펴보다가 베이컨과 햄, 계란, 빵으로 구성되어 있는 플레이트를 하나 시켰다. 오늘 계속해서 급경사를 올라온 탓인지 몸에 힘이 없다. 그래도 내가 시킨 메뉴는 남김없이 싹싹 비우고 나니 조금 살 것 같다. 이제 배가 부르니 잠이 쏟아진다. 공기는 차갑지만 볕은 따뜻하다.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자려고 하는데 주변이 꽤 시끄럽다. 100명 이상 수용 가능한 알베르게이니 그럴만도 하다. 자는둥 마는둥 눈만 붙이고 일어났다. 오늘 저녁은 식량가방에 있는 레토르트 식품과 남은 빵, 어제 산 초리소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 생각이다. 저녁을 먹기 전 잠시 알베르게를 나와 산책을 하다가 간간히 길에서 봤던 한국인 분들을 만났다. 얘기를 나누다가 '맥주 한잔 하시죠'해서 바에 들어갔다. 모두 내 나이와 비슷한 또래이고, 남자 분은 나보다 하루 일찍 생장에서 출발했으며, 여자 분은 레온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까미노를 걸으며 느꼈던 점, 까미노 중 일어난 일들, 앞으로의 계획들을 얘기하며 맥주잔을 비웠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저녁거리를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한국인들이 한 쪽 테이블을 차지하고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그냥 인사만 하고 내 저녁을 준비했다. 빵을 자르고 치즈와 초리소를 얹어 다시 덮는다. 레토르트는 전자레인지에 2분 정도. 한국어로 가득한 주방에서 샌드위치와 닭고기 레토르트를 먹었다.
오 세브레이로는 지대가 높고 날이 추워서 그런지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 빨래를 거두어 내 침대 프레임에 널고 이제 잘 준비를 해볼까 하는데 오늘 바로 내 옆 침대에 배정받은 에어비앤비 아저씨가 주방에 한국인들하고 술 한잔하자고 나를 불러낸다. 그래도 어르신이 직접 와서 말씀하시니 주방으로 향했다. 다행히 술은 거의 끝나는 분위기에 얘기만 나누고 있었다.
거기에 한국인 부부 분이 계셨는데 그들은 까미노 북쪽 길을 걷다가 비야프랑카에서 프랑스길과 만나 지금까지 걷고 계신다고 한다. 두 분은 까미노를 같이 2번이나 오셨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다. 혼자서도 벅찬 길을 부부가 같이. 그것도 2번씩이나. 존경스럽다.
40도짜리 포도껍데기로 만든 증류주를 몇 잔 얻어마시고 뒷정리와 설거지를 돕다가 얼른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제 끝이 조금씩 보이는 것이지 아직 끝난게 아니다. 내일도 걸어야지.
알베르게 클로징 타임이 되기 전에 일몰을 보기 위해 담배를 태우러 나갔다. 담배를 피고 있으니 전날 비야프랑카에서 봤던 이탈리아 아줌마들과 라몬, 길에서 많이 봤던 스페인 친구 둘이 알베르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들도 일몰을 보기 위해 시간 맞춰 돌아는 듯 했다. 비록 구름이 조금 꼈지만 다같이 담배를 태우며 해가 지는 쪽을 바라본다. 일몰과 함께 다같이 사진도 찍었다. 그리곤 다들 또 길에서 보자며 인사를 하고 각자 침대로 돌아갔다. 우짜든둥 건강하고 행복하게.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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