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일기
어제 오락가락하던 비가 오늘은 새벽부터 온다. 6시에 트리아카스텔라 알베르게를 나와 까미노 길에 오른다. 칠흑 같은 길을 헤드랜턴에 의지해 거든다. 오늘은 비가 와서 더 어두운 듯하다. 트리아카스텔라 마을을 빠져나오니 갈림길이 있다. 사모스를 거쳐 조금 돌아가는 길과 거리가 짧은 대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언덕을 지나는 길.,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전날 헤드랜턴을 충전한다고 충전했는데 30분도 안돼서 꺼져버린다. 다행히 마을이 가까워 불빛을 따라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다행히 비가 많이 오진 않는다. 이슬비, 안개비 정도. 마을에 있는 어느 헛간의 처마 밑에 들어가 배낭커버를 씌우고 랜턴을 다시 조금 충전한다. 그리고 다시 출발. 이제 곧 일출시간이지만 아직 컴컴하다.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몇 차례 오르내렸을까. 자욱한 안개가 깔린 마을이 보인다. 소들은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지만 사람의 인기척은 없는 신가한 동네다. 이런 촌동네에 순례자를 위한 작은 자판기가 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프던 찰나였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 뽑고, 가방에서 하나 남은 빵과 과자를 먹으며 앉아 쉬었다. 안개 덮인 조용한 마을에 새소리와 소 울음소리만 들린다. 잠깐이었지만 충분한 휴식이 되었다.
다시 출발한 지 얼마 되지않아서 도네이션 바 표지판을 보았다. '오스카'라는 이름의 도네이션 바 주인이 와서 커피 한 잔 하고 가란다. 나는 따뜻한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 뭐에 홀린 듯 들어갔다. (비도 맞아서 그런지 꽤 추운 날이었다.) 보헤미안, 히피스러운 인테리어가 진짜 멋있는 곳이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인데도 순례자들을 위해 도네이션 바를 열어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오스카에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부탁하고, 바나나 하나를 뜯었다. 1유로를 기부통에 넣고,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였다. 커피를 즐기고 있으니 다른 순례자들이 지나간다. 그들에게도 오스카가 들어와 쉬었다 가라고 하지만 이내 쌩쌩 지나쳐간다. 나도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스카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다시 길에 올랐다.
제법 날이 밝았다. 하지만 오늘 오른쪽 무릎이 조금 좋지않다. 아침에 약도 먹었는데... 아마 날씨 탓이리라. 대도시 레온을 지나면서 중간중간 마을이 많아진 건 확실하지만 쉴 수 있는 카페나 식당이 있는 마을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은 길에 있는 소똥이 비와 섞여 최악의 길 상태가 된다. 쿰쿰한 소똥냄새를 맡으며 걷다 보니 오늘의 첫 카페를 발견했다. 들어가서 카페 콘레체와 크루아상을 시켜 먹었다. 아까 지나갔던 순례자들도 다들 이 카페에 들어와 쉬고 있었다. 앞으로 사리아 도착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날은 여전히 우중충하지만 비는 그쳤다. 따각따각 지팡이를 짚으며 사리아에 들어섰다.
사리아 도시 입구부터 한국 라면과 소주를 파는 상점이 보인다. 사리아부터는 순례자가 급격히 늘어난다. 산티아고 도착하여 완주증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100km 이상 순례길을 걸어야하는데 사리아가 딱 그 지점인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 중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사리아에서부터 까미노 순례길을 걷는다고 한다. 지금부터는 순례길 곳곳에 알베르게가 있고, 무니시팔 공립 알베르게도 규모가 꽤 커진다.
나는 사리아로 들어와서 어제 예약한 알베르게로 향한다. 체크인 시간인 11시반이 약간 지났는데도 알베르게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다. 일단 밖으로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햄버거와 와인을 하나 시켜 먹었다. 새벽에 트리아카스텔라를 출발할 때 만났던 일본인 아줌마도 거기서 만났다. 그녀는 오늘 다음 마을인 포르토마린까지 갈 예정이라고 한다. 동키 서비스로 배낭을 먼저 보내놓고 알베르게 예약까지 해놓아서 괜찮다고 한다. 그래도 트리아카스텔라에서 포르토마린까지 40km가 넘는 거리인데... 대단하다.
햄버거를 다 먹고 다시 알베르게로 갔는데 여전히 아무도 없다. 맞은 편 바 사장님이 내가 헤매고 있는 것을 보고 나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자기 가게에 들어와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왓츠앱으로 체크인이 언제 가능하냐고 물으니 맙소사..... 내 예약이 오늘이 아닌 내일로 잡아두었다고 한다. 싸고 가성비 좋은 알베르게인 것 같아 예약했는데.... 어쩔 수 없이 다른 알베르게를 급하게 알아본다. 오늘은 사람들이 많은 무니시팔 공립 알베르게는 가기 싫어 부엔까미노 어플로 근처 다른 알베르게를 알아본다. 다행히 100m 정도 내려가니 12유로짜리 알베르게가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소나기도 쏟아진다. 비를 맞으며 100m 정도 걸어가 알베르게 1층으로 들어갔다. 사장님께 침대 나은 것이 있냐고 물으니 다행히 침대가 있다고 한다. 비를 쫄딱 맞은 내가 안쓰러웠는지 일단 자리에 앉아 조금만 쉬라고 한다. 신발을 갈아 신고, 체크인 준비를 했다. 1층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가 내 침대를 배정받았다. 3층? 4층? 까지 있는 규모가 꽤 큰 알베르게였고, 시설 또한 굉장히 깔끔하고 쾌적했다. 어쩌면 오늘 알베르게 예약 이슈가 득이 되었을 수도. 나는 문과 가까운 벙커침대 중 1층에 자리를 잡고 얼른 샤워와 빨래를 했다. 빨래를 테라스에 널고 있으니 반가운 해가 난다.
이제 동네 구경을 나설 차례다. 먼저 마트로 향해 빵과 사과, 과자, 무니시팔 알베르게에서 쓸 일회용 숟가락을 샀다. 가방은 조금 무거워 졌지만 그래도 든든하다. 구글맵을 보다가 사리아에 흐르는 강변에 괜찮은 뽈뽀집이 있어 그쪽으로 향했다. 겉보기에 조금 팬시해 보이는 식당이라 비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종업원에게 자리를 안내받고 메뉴를 달라고 하니 '온리 뽈뽀'라고 한다. 아 제대로 찾아왔네. 뽈뽀와 함께 빵과 화이트 와인 한 잔도 시켰다. 주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뽈뽀가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아주 맛있어 보인다. 맛을 보니 처음 뽈뽀를 먹었던 아스토르가 뽈뽀보다 살짝 비릿한 향이 났지만 그래도 너무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 식당 안은 현지인들만 가득하여 더욱 믿음이 갔다. 맛있는 뽈뽀와 와인을 음미하며 한 접시를 비우고 나니 웨이터가 와서 디저트를 줄까라고 내게 물어본다. 다른 테이블을 보니 다들 먹고 있길래 나도 달라고 했다. 한국의 제사상에 올라가는 젤리? 같은 텍스쳐에 얇게 자른 푸딩 같은 것과 치즈가 나왔다. 포크로 조금 떼어먹어보니 상상 이상의 맛이었다. 한국에서 파는 곶감치즈말이와 비슷하달까. 달달한 디저트도 다 먹으니 또다시 웨이터가 와서 커피 줄까라고 묻길래 아메리카노 한잔을 부탁했다. 따뜻한 커피로 입가심까지 완벽하게 하고 계산할 때 보니 17유로가 나왔다. 나쁘지 않은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뽈뽀 식당을 나와 강변을 산책하며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내 침대가 있는 방으로 가니 윌리엄이 도착해 있었다. 윌리엄은 비야프랑카에서 봤던 독일인 친구다. 서로 인사와 안부를 묻고 나는 잠시 낮잠을 청했다. 오늘은 조용한 알베르게라서 낮잠을 푹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자다가 5시쯤 일어났다. 이제 저녁 먹을 식당을 찾아야 한다. 담배도 살 겸 다시 시내 쪽으로 나간다. 구글맵을 보니 평점이 꽤 좋은 빵집이 있다. 저녁 먹기 전 빵을 좀 먹을까 해서 그 빵잡으로 향한다. 그곳은 갈리시아 지방 음식인 엠파나다가 유명하다고 한다. 물론 다른 종류의 빵들도 평이 좋았다. 매장에 들어가니 현지인들이 주문하며 포장해간다. 나는 엠파나다와 종업원의 추천을 받아 다른 종류의 빵도 2개 정도 더 샀다. 종업원이 어느 나라에서 왔냐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한국인 순례자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한 빵집인 것 같다. 감사 인사를 하고 나와 알베르게 가는 길에 빵을 먹을만한 적당한 벤치를 찾아 앉았다. 엠파나다를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얇은 페스츄리 안에 고기와 각종 야채를 볶은 것이 들어가 있었다. 크기도 꽤 커서 한 끼 식사대용으로 충분했다. 엠파나다 한 조각을 먹고 배가 불러 나머지 빵은 내일 먹을 예정이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저녁식사로 엠파나다만 먹는 것이 아쉬워 오전에 햄버거를 먹었던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를 먹으려 했다. 그렇지만 오늘 점심으로 먹은 뽈뽀 지출이 커서 대안으로 케밥집을 찾아갔다. 순례길에서 종종 만나는 케밥집은 싸면서도 든든한 순례자 음식인 듯하다.
케밥집에 가서 케밥 플레이트를 하나 시키고 맥주를 시키려고 하니, 자기네 식당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 아쉬워서 포장까지 생각했지만 맥주 대신 그냥 음료수를 시켜 매장에서 먹었다. 오늘은 감자튀김 대신 밥으로 정했다. 찐 쌀밥과 고기, 샐러드까지 완벽한 탄단지. 아직 엠파나다를 먹은 배가 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맛이 있으니 계속 입으로 음식이 들어간다.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이제 진짜 잘 준비를 하러 알베르게로 돌아간다. 내일 다시 떠날 준비를 하고 알베르게 앞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으니 한국인 아저씨 두 분을 만났다. 역시나 거나하게 한 잔 하시고 또 한 잔 하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요 앞에서 같이 딱 한잔만 하자고 한다. 알베르게 클로징 시간이 30분 남았지만 알베르게 바로 앞이라 마지못해 이끌려 갔다. 바에 들어가서 전에 오 세브레이로에서 먹었던 40도짜리 독주를 3잔 시켰다. 테라스에 앉아 얘기하다가 딱 1잔씩 털어 넣고 가자고.
나이가 제일 많은 77세 할아버지는 내일 손주와 사리아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하신다. 에어비앤비 아저씨도 같이 동행할 예정이고, 다 같이 '루고'라는 도시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와 이렇게 길에서 보는 것이 오늘이 마지막이거나, 이제 산티아고에서 볼 것 같다고 말하신다. 그래도 길에서 만든 정도 있는데 다같이 짬을 하고 한잔 털어 넣고 내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서 기념 셀카도 남겼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이제 진짜 자러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2. 사리아 알베르게 추천
전날 예약한 알베르게 부킹이 누락되어 급하게 찾아들어간 알베르게이다. 친절하게 맞이해주어 좋았고, 침실, 샤워실, 화장실 등 모든 시설이 깔끔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방을 이용할 수 없다는 점. 구글 리뷰를 보면 주방이 있는 듯 하지만 나는 이용할 수 없었다. 침실 테라스에서 보는 뷰도 참 근사했다.
3. 사리아 맛집 추천
(1) 사리아 빵집 추천
사리아에서 한국인들에게도 꽤 유명한 빵집이다. 엠파나다 뿐만 아니라 다른 빵들도 맛이 좋으며, 종업원이 간단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정도다. 사리아에 머문다면 한번쯤 방문해볼 법한 빵집이다.
(2) 사리아 뽈뽀 맛집 추천
아스토르가 이후 두번째 뽈뽀를 먹었다. 순례자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많이 방문하는 곳이며, 내가 방문했을 때는 뽈뽀 단일 메뉴만 된다고 했었다. 문어의 비린 맛은 거의 없었으며, 양 또한 부족하지 않았다. 뽈뽀를 다 먹고 나오는 디저트와 커피까지 모두 완벽했다. 나는 뽈뽀+디저트+아메리카노+화이트 와인 1잔 까지 합쳐 총 17유로를 지불하였다. 위치도 사리아 강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식후 산책하기 좋으며,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용이하다. 까미노 중 대도시에서 뽈뽀를 먹고 싶다면 이 곳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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