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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에서 기상 후 친구들과 함께 어제 저녁식사를 했던 곳으로 아침을 먹으러 간다. 루카, 매넌, 마노스. 식빵에 햄, 치즈, 파운드케이크, 버터, 잼, 꿀 등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음료는 오렌지주스가 있고 웨이터가 커피를 따라준다. 배는 채워야 해서 먹기는 다 먹었지만 라면이 너무 땡긴다. 가방을 다 챙기고 밖에서 담배를 태운다. 매넌이 먼저 출발, 준비 중인 루카와 인사를 나누고 나도 출발이다.
오늘은 날이 꽤 흐렸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하늘이다. 그래도 오늘도 역시 호기롭게 출발했다. 먼저 앞서간 순례자들에게 '부엔까미노' 인사를 하며 하나둘 앞질러 나간다. 얼마나 걸었을까. 비가 한두방울 정도 떨어져서 배낭커버를 씌웠다. 그리고 이내 장대비로 바뀌었다. 다행히 숲길이 아니라 근처 집 처마에 잠시 비를 피해 전자기기들을 배낭에 넣었다. 나는 판초를 구매하지 않았다. 까미노 날씨는 늘 좋은 줄 알았건만... 집 처마 밑에서 출발을 망설이다 보니 루카와 마노스가 판초를 쓰고 등장한다. 루카가 날 보고 판초가 없냐고 묻는다. 그리고 자신의 바람막이 같은 점퍼를 건네준다. 방수가 되는 자켓은 아니었지만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매넌과도 합류해 넷이서 나란히 걷게 되었다. 마침 산길로 막 진입했을 때였다. 바닥은 질척이고 옷은 이미 다 젖었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여서 기분 좋게 걸었다. 동굴 같은 숲길을 지나고 오르막을 오르고 또 내리막을 내려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비가 그칠 때 잠깐 쉬면서 허기를 달랠 식당을 찾았다. 우리는 야외 테라스에 있는 비맞은 의자의 물을 털어냈다. 각자 먹을 음식과 음료를 주문하고 먹고 있으니 다른 친구들도 속속 식당에 도착한다. 프란체스카 자매들, 멜라니, 마이클. 그새 알게 된 친구들이 꽤 된다. 이름을 안 까먹으려고 몇 번이나 되뇌지만 잘 외워지지 않는다. 이젠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다시 출발한다. 마노스가 발에 물집이 많이 잡혔다고 한다. 일단 당장 급하게 처치할 것이 아니라 주비리에 도착하여 치료를 하자고 한다. 매넌과 루카가 앞질러가고 마노스와 내가 뒤를 따랐다. 어차피 우린 주비리에서 볼 거니까. 어제만큼 고된 길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었다. 비가 와서 땅은 질고, 해가 쨍쨍해 그 습기가 올라온다. 비까지 쫄딱 맞아버려 땀이 비와 섞여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내리막길의 기점에 도착했다. 이때까지 몰랐다. 왜 사람들이 등산스틱을 사용하는지. 내려갈 때마다 나의 몸무게와 배낭무게가 고스란히 내 무릎으로 전달된다. 그렇게 내 무릎에 스트레스가 쌓여 주비리에 도착할 때쯤엔 도저히 걸을 수 없을 만큼 무릎이 아팠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양 무릎의 안쪽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찌릿찌릿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주비리에는 까미노 용품을 파는 상점이 없었다.
친구들이 먼저 도착해 어느 바의 야외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맥주 한잔을 시켜 앉았다.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맥주까지 모든게 완벽했지만, 내 무릎만은 아니었다. 이제 이틀밖에 안됐는데... 맥주를 다 마시고 일단 친구들과 오늘의 알베르게를 잡으러 갔다. 다행히 공립 알베르게에 남은 침대가 있었다. 그리고 운 좋게 루카와 매넌, 마노스와 나까지 4인실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체크인 후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잠시 쉬면서 무릎 통증에 대한 공부를 했다. 갑자기 무리한 하중이 무릎에 가해지면 인대가 손상되어 생기는 통증이라고 한다. 이번 주비리로 오는 루트의 내리막은 비를 맞은 낙엽과 바위로 굉장히 미끄러웠다. 나도 그 희생양 중 하나였다. 무릎 마사지도 검색하여 다리와 발, 무릎을 계속 주물렀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괜찮아져야 할 텐데.... 휴식을 취하다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도착한 바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자리가 없어 둘이서 큰 테이블을 쓰고 있는 사람과 쉐어해서 밥을 먹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잠시 봤던 커플이었다. 얘기를 나누다가 매넌이 트럼프 카드를 꺼냈다. 나와 루카는 그 게임을 몰라 매넌과 마노스가 친절히 알려주었다. 카드의 숫자를 이용한 게임이었는데 꽤나 복잡했다. 몇 번 해보니 꽤나 재밌었다.
- 상호 : Txatxoberri, panaderia Arrasate
- 주소 : Plaza lglesia, 1-2, 31630 Zubiri, Navarra, Spain
- 오전 7시~오후 9시 (구글맵스 상 휴무없이 운영)
그러다 갑자기 밖에 비가 퍼뭇기 시작하자 저녁 먹으러 나온 순례자들이 우리가 있던 바를 채운다. 테이블들을 붙이고 너무 시끄러워지자 나와 루카는 밖에 있는 스탠딩 테이블로 나갔다. 같이 담배를 태우며 약간의 진대를 나누었다. 요즘 드는 생각들과 앞으로의 계획들, 삶을 살아가는 태도 같은 것들.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우리 나이 때에 하는 생각들이 글로벌하게 비슷하구나라고 느꼈다. 밤 12시 편의점 진실의 의자 같은 테이블에서 얘기를 나누던 중 바 안에 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온다. 마노스는 이번에 걸으면서 잡힌 물집들을 마이클이 처치해준다고 한다. 그들이 잠시 마이클의 숙소로 간 사이 한 명의 여자애가 나에게 담배를 빌린다. 되게 불쌍하고 딱한 표정으로 말해서 나는 기꺼이 담배 한 대를 주었다. 그녀는 덴마크에서 온 프리다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 친구들 중에도 덴마크 애가 있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이내 물집처치를 끝낸 마노스가 다시 왔고 마노스와 프리다는 둘이서 꽤 많은 얘기를 나누는 듯했다. 보기 좋았다.
나는 무릎 상태가 좋지않아 쉬어야겠다고 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알베르게 1층 현관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부러진 지팡이가 있었다. 보자마자 이거라도 일단 챙기자 라는 생각이 들어 부러진 지팡이를 챙겼다. 인터넷으로 무릎 마사지를 검색해 계속 주무르고 스트레칭을 했지만 당장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찬구들이 방에 돌아와 잘 준비를 할 때 나는 내일 5시에 일어나 먼저 일찍 출발하겠다고 했다. 천천히 가고 있을 테니 팜플로나에서 보자고 약속했다. 루카와 매넌, 마노스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날 볼 때마다 무릎 상태가 어떻냐고 물으며 걱정해 주어 참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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