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일기
드디어 마지막 날이 밝았다. 전날 다행히 잠을 설치지 않고 푹 잤다. 산티아고 까지 약 10km 정도만 걸으면 되어서 오늘은 7시쯤 알베르게를 나섰다. 오늘도 날은 흐리지만 그래도 발걸음은 매우 가볍다.
라바꼬야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까미노 루트에 오르며 내가 처음 이 길을 걸으려고 생각했던 때가 생각났다. 그땐 단지 여행이 목적이었고, 친구 민욱이가 적극 추천해서 더욱더 관심이 갔었다. 그리고 처음 생장에서부터 지금까지 걸어오며 만났던 친구들, 황홀한 풍경들, 뜻깊었던 경험들을 하나씩 복기해 냈다. 아마 내 평생의 추억거리가 될 나의 첫 까미노.
가는 길 도중에 푸엔테 비야렌테에서 만났던 스위스 친구를 다시 만났다. 그는 어제 산티아고에 도착하여 1박을 하고 이제 스위스로 가는 비횅기를 타기 위해 산티아고 공항으로 간다고 한다.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고 앞으로의 건강을 기원하였다.
산티아고로 가는 도중에 순례자 공원 같은 것을 조성해 놓은 곳이 있어 중간에 들리기로 했다. 그곳에는 멋진 순례자 동상과,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근사한 공원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도 거의 없어 혼자 편하게 구경하고 쉴 수 있었다. 조각품을 구경하던 중 설명에 한글이 적혀있는 것이 있었다. 다가가 자세히 보니 제주도 올레길과 까미노 순례길의 상호협약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제주도 안 간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제주 올레길도 다음에 걸어보고 싶다.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까미노 루트에 올랐다. 차가 다니는 큰 도로가 나오고, 점점 도시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행히 흐렸던 날씨도 조금씩 개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입구부터 까미노를 축하하는 조형물과 표지판들이 보인다. 덩달아 나도 점점 마을이 들뜨기 시작한다. 산티아고는 꽤 큰 도시라 마지막 종점인 산티아고 대성당까지는 꽤 걸어가야 한다. 그렇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다. 산티아고 현지 주민들은 하루를 시작하려고 바삐 움직인다. 그 틈에 순례자들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그곳으로 향한다.
지도를 보니 대성당에 거의 다와간다. 산티아고 대성당을 보는 순간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운다고 하는데 나도 과연 눈물을 흘릴까? 성당에 가면 이미 도착한 친구들이 좀 있을까? 오만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33일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나의 까미노가 끝을 보인다. 대성당으로 가기 위해 살짝 내리막 길의 작은 굴다리를 지나자 큰 광장이 보였다. 그리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크고 웅장한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다. 사진으로 봤던 것과 달리 훨씬 더 크고 웅장했다. 그리고 광장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대성당을 요목조목 뜯어보았다. 그 순간 내가 해내었다는 성취감이 몰려온다. 언제 마지막으로 느꼈는지도 까먹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뿌듯함이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 길을 걸으면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버렸는지. 이 일기에 쓰자니 적잖이 부끄럽다. 따로 후기를 쓰게 된다면 그때 적어보겠다.
그렇게 광장에 앉아 5분 정도 멍하니 성당을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미 도착한 순례자들에게 사진을 부탁했고, 나름 괜찮은 사진을 건졌다. 그동안 고생한 나의 백팩과 신발, 지팡이들 사진도 찍었다. 이 애들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까미노를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벤 아저씨도 도착했다!!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서로를 축하해주었다. 벤 아저씨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눈물을 흘렸다. 적지 않은 나이에 까미노라는 도전은 훨씬 힘들지만 그만큼 성취감과 기쁨 또한 더 크게 다가오리라. 벤 아저씨와 한동안 얘기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다가 작별인사를 했다.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나도 눈물이 찔끔 났다.
이제 대성당을 뒤로하고 나는 완주증 발급을 위해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소로 갔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으며, 생각보다 사무소 규모가 상당했다. 사무소에 들어가면 안내원이 온라인으로 사전 발급신청을 했는지, 안 했는지 묻는다. 나는 사전발급 신청을 하지 않아 신청을 하려고 컴퓨터 앞으로 갔다. 이름, 국적, 출발지, 출발날짜, 도보로 완주했는지, 자전거로 완주했는지 등등을 기입한다. 입력을 마치면 번호표를 뽑고 다른 창구로 이동한다. 거기서 자기 번호가 뜨면 해당 창구로 가면 된다. 우리나라 은행과 비슷한 시스템이었다. 접수원에게 크레덴셜과 여권을 보여주면 완주증을 발급해 준다. 구겨지지 않게 들고 다닐 수 있는 하드 케이스는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완주증을 발급하고 나와 이제 오늘 묵을 알베르게를 구해야 한다. 산티아고에는 많은 알베르게와 호텔이 있지만 대성당 주변에 있는 알베르게는 가격이 꽤 비싸다. 그래서 나는 대성당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규모가 아주 큰 알베르게를 찾아 그쪽으로 향했다. 옛날에 성당인가, 병원인가... 아무튼 그런 용도로 사용하던 건물을 개조하여 지금은 알베르게로 운영 중인 곳이다. 알베르게는 대성당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져 있었다. 도착했는데 아직 입실시간이 도래하지 않아 체크인만 하고 가방은 1층에 가방을 잔뜩 모아둔 곳에 두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배가 고파 주변에 식당에 있을까 해서 찾아보니 햄버거 집이 있다. 식당 내부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고, 나는 메뉴판에 있는 햄버거 하나를 시켰다. 이전에 까미노 중 먹었던 햄버거와 비슷하게 큼지막한 사이즈에 신선한 야채, 두툼한 패티까지 있었다. 맥주까지 한잔하고 완벽한 한 끼를 해결했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 내가 배정받은 방으로 갔다. 1층 침대가 있는 방이었고, 개인 사물함까지 있었다. 내 옆 침대에 배정받은 친구와 얘기하며, 매트리스와 베개 커버를 씌웠다. 그 친구는 오늘 산티아고에 머물고, 내일 또다시 묵시아까지 걸어간다고 한다. 오늘 비가 오락가락해서 날이 춥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이제 워커를 벗어던지고, 애증의 살로몬 신발을 꺼냈다. 로그로뇨로 가는 40km를 살로몬을 신고 걸었다가 발에 잔뜩 물집이 잡힌 이후 배낭 제일 밑에 짱박아 두었던 것이다. 산티아고에 왔음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줄 선물도 좀 사고, 음식도 먹을 참이다. 결혼하여 아이가 있는 친구들을 위해 아동용 팔찌와 아동용 티셔츠도 샀다. 빨리 선물해서 우리 조카들에게 입혀보고 싶다. 그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이 길을 걸을지 모르니 그전에 미리 까미노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고 싶지만, 아직 너무 어리다.ㅎㅎㅎㅎ
수많은 기념품샵들 중 엄선하여 선물들을 사고 이제 식당을 알아보는데 구글 평점이 꽤 높은 식당들은 이미 만석이다. 두 번 정도 실패 후 괜찮아 보이는 타파스 바에 들어가니 다행히 바 자리가 남아있었다. 시끌시끌한 식당에서 와인과 타파스 몇 개를 주워 먹으며 내일 떠나는 포르투에 대한 정보도 조금 찾아보았다. 그리고 식당을 나와 배도 꺼뜨릴 겸 조금 걸었다. 길을 걷다가 카페에 들러 커피와 산티아고 케이크도 한 조각 먹었다. 이때까지 산티아고 케이크를 두 번밖에 못 먹은 것이 조금 아쉽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오늘은 낮잠을 자지 않고 잠시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렸다. 오늘 저녁에는 민욱이가 추천해 준 맛집에서 저녁을 먹을 참이라 꽤 기대가 되었다. 민욱이도 알아주는 쩝쩝박사라 믿고 가는 편이다. 구글 지도로 위치와 오픈시간을 봐두고 시간에 맞춰 나갈 생각이다.
건조기까지 돌려 뽀송해진 빨래를 정리하고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기대하며 슬슬 나갈 채비를 했다. 구글 지도를 보며 천천히 걸어가는데 도착할 때쯤 되니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란다. 이게 맞나 싶었지만 지도를 믿고 일단 가본다. 가보니 구글 지도에 있는 사진과 똑같은 외관의 식당을 발견했다. 오픈시간이 10분 정도 남아 바로 앞 기념품샵 구경을 하는데 사람들이 점점 식당 앞으로 모여든다. 이에 밀릴 새라 나도 식당 바로 앞에서 웨이팅을 했다. 딱 정각이 되자 입구를 막아놓았던 펜스를 주인장이 치우며 순차적으로 입장시켰다. 사람들이 오픈런할 정도로 맛집인 줄은 몰랐는데 나의 기대감은 더욱 부풀었다.
혼자 왔다고 하니 2인석 테이블로 나를 안내해 주었고, 나는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받아 들었다. 한국에서는 잘 먹지 않는 해산물 요리를 먹을 참이다. 일단 맛조개찜과 홍합찜, 화이트 와인을 한병 시켰다. 산티아고에 무사히 도착한 나를 위한 자축파티이다. 이윽고 음식이 서브되었고, 나는 감동을 금치 못했다. 맛조개와 홍합은 비린 맛이 전혀 없이 쫄깃한 식감과 조개 본연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른 테이블에서 많이 시켜 먹는 뽈뽀도 작은 접시 하나를 주문했다. 뽈뽀 또한 훌륭했다. 와인 1병에 메뉴 3개, 빵 추가까지. 지금 내가 무사히 산티아고에 도착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또 앞으로의 행보를 생각하며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쳤다. 계산을 치르며 종업원에게 '혼자 와서 이렇게 많이 먹은 사람 있냐'라고 물으니 또 있단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빵빵해진 배를 부여잡고 이제 잠을 청하러 알베르게로 돌아간다.
해가 점점 기운다. 언덕배기에 있는 알베르게로 가는 길에 예쁜 노을이 잘 보인다. 알베르게 앞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으며, 그동안 길을 걸으며 만났던 친구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이 순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친구들과 산티아고를 함께 하지 못한 것이다. 많이 감사하고, 또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이 길. 언젠간 또다시 오리라 다짐해 본다. 난 이제 더 이상 순례자가 아니다. 나 내일 이제 버스 탄다.
2. 산티아고 알베르게 추천
산티아고에 도착하여 묵었던 알베르게이다. 병원인가, 성당인가, 수녀원인가로 사용하던 큰 건물을 개조하여 현재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으며, 대성당 주변의 알베르게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머물 수 있다. 지하층에는 넓은 주방시설과 간단한 스낵과 필요한 용품을 살 수 있는 슈퍼도 있으며, 세탁기와 건조기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1인실 이용료가 다인실 도미토리 이용료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산티아고에 도착하여 조용히, 편하게 쉬고 싶다면 1인실도 적극 추천한다. 겉 외관은 오래되고 낡아 보여도 화장실과 샤워실을 비롯한 전반적인 시설은 인테리어 공사를 싹 진행하여 깔끔하다.
Albergue Seminario Menor · 4.3★(1158) · 호스텔
Av. de Quiroga Palacios, 2A, 15702 Santiago de Compostela, A Coruña,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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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산티아고 맛집 추천
(1) 산티아고 햄버거 맛집 Hamburguesería / bar Señaris
알베르게 세미나리오 메뇨르에 머무신다면 이 햄버거집을 들리시는 걸 추천합니다. 알베르게 입실 시간 전 가방만 맡겨두고 간 집입니다. 햄버거뿐만 아니라 다른 타파스도 판매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가격도 합리적이면서 맛도 정말 좋았습니다. 알베르게 세미나리오 메뇨르에서 걸어서 3분 정도 거리로 아주 가까이 위치해 있다.
Hamburguesería / bar Señaris · 4.7★(253) · 햄버거 전문점
Av. de Quiroga Palacios, 3, 15703 Santiago de Compostela, A Coruña, 스페인
www.google.com
(2) 산티아고 타파스 맛집 A Taberna do Bispo
각종 식당과 상점들이 즐비하게 있는 Rúa do Franco에 위치해 있는 타파스 바이다. 저는 바 자리에 앉아 자리 바로 앞에 있는 쇼케이스에 진열되어 있는 타파스들을 그때그때 골라 주문해 바로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음식의 맛과 종업원의 서비스 또한 좋았으며, 가볍게 타파스에 와인 한 잔 하기 좋은 식당이다. 뽈뽀 같은 요리류도 하고 있으니 4명 이상 단체로 가기도 좋을 듯하다. 사람이 많이 붐비는 거리인 만큼 단체로 이용하고 싶을 땐 예약을 필수로 해야할 듯 하다.
A Taberna do Bispo · 4.4★(5790) · 타파스 바
Rúa do Franco, 37, 15702 Santiago de Compostela, A Coruña,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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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산티아고 저녁식사 맛집 Taberna O Gato Negro
친구 민욱이가 추천해 준 산티아고 맛집이다.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저녁만찬을 즐겼던 식당으로 순례자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식당이다. 메뉴판에 요리 이름이 영어로도 적혀있으며, 가격 또한 매우 합리적이다. 메뉴 3개에 화이트 와인 1병까지 먹고 50유로가 조금 안되게 나왔다. 제가 정말 정말 강추하는 식당이니 산티아고에 도착하신다면 꼭 이 식당에서 한 끼 드셔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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